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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을 > / 마광수 가을이 우리를 에워싸 안았다 가을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가을이 우리를 사랑에 미쳐 날뛰게 했다 누군가 염세자살하고 있는 가을 누군가 환각제를 먹고 있는 가을 누군가 자살미수로 살아나고 있는 가을 누군가 환각제 복용으로 잡혀 가고 있는 가을 그 가을에 우리는 만났고 그 가을에 우리는 밤새도록 울었다 더 큰 오르가슴에 대한 가슴 시린 안타까움으로 더 근사한 죽음에 대한 깊디깊은 갈증으로 (시집 <사랑의 슬픔> 에서)



Posted by 광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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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미운 역사 ............................................ 마광수




역사는 얄밉다. 역사에 희망을 걸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엔 분명 신의 은총과 섭리가 작용하지 않는다. 시저가 독재정치를 하면서 로마의 황제가 되기를 꿈꾸자 브루투스는 공화제를 살리기 위해 시저를 암살했다. 시저가 칼을 맞아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부르짖었다는 말, “브루투스, 너마저도!”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브루투스는 시저의 심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저를 죽였다. 사정(私情)보다 대의(大義)를 중시하겠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루투스 역시 시저의 심복이었던 안토니우스의 대중연설 때문에 곧바로 역적이 되어야 했다. 안토니우스는 시저의 유언장을 로마 시민들 앞에서 공개하여 시저의 불타는 애국심을 상기시킨 결과, 브루투스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브루투스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안토니우스한테 죽을 수밖에 없었다.

시저의 죽음은 공화정을 부활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제정(帝政)의 확립을 촉진시켰다. 시저가 죽은 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티격태격 싸우다가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고, 잇따른 내전에 지친 로마 국민들은 옥타비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18세기 말 루이 왕조의 학정에 지친 프랑스 국민들은 혁명을 일으켜 루이 16세를 몰아내고 공화정을 출범시켰다.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처형할 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국민들은 열정과 희망에 들떠 조국의 ‘민주화’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가 등장하여 공포정치를 실시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처형하자 점차 실망하게 되었다.

또한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끊임없는 내전 또한 ‘민주화’에 대한 회의와 염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로베스피에르 이후 치열한 권력다툼 끝에 암살과 처형이 반복되자 돌연 나폴레옹이 나타났다.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로 선출되었고, 국민들은 왕정복고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삼선개헌 이후 독재정국을 굳혀 나가자 4. 19 혁명이 일어났다. 이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이기붕은 아들 손에 죽었고 이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했다. 곧바로 ‘단군 이래 최대로 자유가 보장됐던’ 민주정이 실시됐다. 그러나 잦은 데모와 정치인들의 내분을 핑계로 곧바로 5. 16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상하게도 학생세력은 별 저항을 보여주지 않았다. 장면 정권이 아주 짧게 지속되어 너무 성급한 쿠데타라는 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박정희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까지 단행해 가며 독재정국을 굳혀 나가자 박정희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김재규가 브루투스처럼 나섰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을 저격했고, 자기는 권력탈취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민주화에 대한 열망 때문에 박 대통령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1980년 ‘서울의 봄’ 시절에는 곧바로 민주화가 달성되는 듯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두환이 등장하여 초고속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중국의 경우 한나라 말기에 동탁이 독재정치를 하자 조조 등의 지방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동탁을 죽였을 때 국민들은 환호하며 조조를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조조는 동탁 못지않은 독재자가 되어 아들 대(代)에 가서 아예 한나라를 없애버리는 단초를 만들었다.

역사는 언제나 지루한 반복의 연속이다. 열렬한 민주화운동 끝에는 반드시 독재자가 나타난다. 대개는 국민들이 원했거나 방조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를 총통으로 뽑은 것도 국민들이었고, 나폴레옹을 황제로 뽑은 것도 국민들이었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일단 ‘독립’이나 ‘민주화’를 쟁취하고 나면 독재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역사에 길이 남는 진정 명예로운 애국지사가 되려면 일찍 죽는 게 낫다. 김구 선생은 설사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독재정치를 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모른다. 그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됐다면 또 다른 형태의 가부장적 독재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영웅의 도래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 요즘도 우리나라의 몇몇 예언가들은 21세기에 한국에서 ‘세계적인 지도자’가 출현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지도자’나 ‘영웅’이나 그게 그건데, 한 사람의 힘으로 국운의 융성이나 세계제패가 이루어질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도대체 ‘세계제패’ 따위의 말을 함부로 내뱉는 국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 자체가 이 대명천지에 어떻게 가능한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치적 독재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의 독재든 누구나 독재를 원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특히나 ‘문화독재’는 위험하다. 조선은 유교적 문화독재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고, 구 소련 역시 마르크스주의적 문화독재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유교적 문화독재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기독교적 문화독재를 꿈꾸는 이들 역시 너무나 많다. 정말 우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한국의 척박한 문화수준에 절망감을 느낀다.

1990년대 이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 같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교 근본주의 운동’ 역시 문화독재의 한 표본이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회교지도자들은 특히 ‘여성해방’에 찬물을 끼얹어, 여성들을 다시 학교에서 추방하고 사회적으로도 활동을 제한시켜 남성의 종속물이 되게 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이 차도르를 쓰지 않거나 외간남자와 얘기만 해도 태형을 당한다.

세계적으로 여성해방 문제가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려놓는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측 못했었다. 그러나 ‘문화의 역사’는 예상을 뒤엎고 독재적 문화행태를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니 역사는 얄밉기 짝이 없고, 역사의 순탄한 진보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새롭게 증명된 셈이 되었다.
Posted by 광마





내가 쓴 시 <감 사(感 謝)>에 대한 시작(詩作) 노트 / 마광수




[산문시] <감 사(感 謝)> / 마광수


너는 내가 첫 데이트 때부터 네 초미니스커트 아래로 희게 드러나 있는 너의 허벅지 사이에 내 손을 다짜고짜 찔러 넣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너무 길이가 짧은 치마라 앉을 때는 다리를 꼬고 있을 수밖에 없어 내 차가운 손바닥은 네 사타구니 사이에 포근하게 갇혔다. 내 손에 전달돼 오는 맨살의 따스한 온기와 ‘노 팬티’로 인한 음모의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나는 너무나 너무나 행복했다. 너는 또 내 더러운 혓바닥이 네 얼굴을 개처럼 핥아대도 조용히 있어 주었고, 내 이빨이 네 귓불을 질겅질겅 씹어대도 가만히 있어 주었다. 너처럼 첫 만남에서부터 나를 편안하게 해준 여자는 없다. 다들 조금씩은 폼을 잡거나 생색을 냈다,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네 사타구니 사이에 손을 찔러 넣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네가 잠자코 내 응석을 받아 주었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1995, 시집 <사랑의 슬픔>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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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 노트>


윗 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네 사타구니 사이에 손을 찔러 넣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네가 잠자코 내 응석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구절에는 사실 약간의 거짓말이 섞여 있다. 이 시는 1994 년 초에 내가 XX 대학교 불문학과에 다니던 S 라는 젊고 싱싱한 여자애를 처음 만나고 나서 쓴 시다. 그녀 쪽에서 내게 계속 전화를 걸어 접근해와서 만나게 된 여자였다.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외모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학생 티가 전혀 안 날만큼 화장을 짙고 세련되게 하고, 또 거기다 손톱도 길게 기르고,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쁜 여자애였다. 그래서 당시 몹시도 외롭던 나는 곧바로 그녀와 모텔로 직행했고, 그 이후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S 가 내 응석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S 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 외모나 치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약간의 ‘능청’을 떤 것은, 시에서든 산문에서든 거기 나오는 여자가 너무너무 예쁘다고 (또는 너무너무 섹시하다고) 표현하면 질투심을 느끼는 독자들 (아무래도 못생긴 여자들이 주가 될 것이다) 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로서는 이 시의 ‘발표’를 의식하여, 독자들한테 적당히 ‘아부’를 한 셈이었다. 얼마 후 나는 이 작품을 어느 문학잡지에 발표하였다.

따져서 생각해 보면, 내가 S 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하게 됐다는 말 자체에도 어폐가 있다. ‘사랑’이라기 보다는 ‘관능적 흥분’이나 ‘기분좋은 발기(勃起)’라는 말이 더 적당할 것이다.

나는 참된 에로티시즘은 ‘사정(射精)’이 아니라 ‘발기(勃起)’에 있다고 늘 생각해왔다. 순진하게 농염한 얼굴과 길디긴 손톱이 그로테스크하게 조화를 이룬 S 의 모습은, 나의 ‘상상적 발기’를 최대한도로 가능하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서 오르가슴의 순간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대하게 하는 시간을 한없이 연장시켜 주었다.

이것은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정(射精)’이란 말을 ‘수정(受精)’이란 말로 바꾸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발기’는 여자나 남자나 같다. 여자는 ‘페니스’대신 ‘클리토리스’가 발기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보지 같은 것은 성기축에도 들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아이 나오는 ‘구멍’에 불과하다). 다시 풀어서 설명하자면, 여자에게 있어 참된 에로시티시즘은 ‘수정’이 아니라 ‘발기’에 있다.
Posted by 광마




<미친 말의 수기> -- 마광수 장편소설
|  베리스타 | 2011-09-08 |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104756

 


희망이란 과연 유용한 것일까? 아니 희망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극한 비관론자의 자아도취 같은 말이지만 아직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오지 못한 희망이란 놈을 알고 있다면 희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판도라는 인류 최초의 여자이자 모든 선물을 합친 여인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모든 남성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천하절색의 여인이라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한 판도라는 신들에게 선물 받은 상자하나를 가지고 지상에 내려온다. 누구도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였지만 호기심이 많은 판도라는 상자를 열고 만다. 상자 안에 갇혀있던 것은 질병과 재앙, 그리고 희망이었다.

문제는 질병과 재앙은 재빠르게 빠져나와 인간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느림보인 희망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재앙과 질병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희망만이 인간을 보호해줄 유일한 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희망마저 판도라의 상자를 빠져나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재앙, 질병, 희망이 뒤섞인 혼돈의 세계가 되었을까? 아니면 인간사회는 희망이 담긴 ‘달콤한 마취상태’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희망은 인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우호적이지 않다. 오히려 희망은 필요이상의 낙관론을 지배한다. 이는 현실이라는 한계상황을 회피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며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을 심어준다. 이게 마광수의 생각이다.

야한 남자 마광수 교수의 <미친 말의 수기>, 그의 전작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가 추구하고자했던 야한 책의 본능적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책이다. 그의 발상은 스스로 창의적이라 할 정도로 세상이 바라보는 시각과는 상당한 차이를 느낀다. 그래 이렇게도 사고할 수 있겠구나 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마광수 교수의 에피소드는 술술 읽힌다. 그는 타고난 본능의 소유자다. 자신의 철학으로부터 민감한 성의 주제까지 거침없는 의견을 발산한다. 하지만 어느 것도 추하지 않다. 오히려 감추는 자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런데 왜 우리사회는 아니 학문풍토는 획일적이지 못하면 팽을 당하는 것일까?

그의 일관적인 주제는 본능이다. 인간은 본능을 속일 수 없다. 단지 억제하거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려할 뿐이지 결국 모든 것은 본능으로 회귀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야한 본능은 극히 일상적이다. 단지 그는 본능적인 자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의 이러한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책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마 교수의 딴지걸기는 책의 제목에 대한 가벼움과 <프라하의 봄>으로 재해석된 영화의 가벼움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가벼움에 대한 해석을 인간과 사회로 구분을 짓는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무거운 존재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엔 가벼운 관계가 훨씬 많아 보이며 무거운 주제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 하지만 사회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사회는 무거운 주제에 익숙하다. 특히 문학에서 창작의 가벼움은 무거움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있는 것은 가벼운 주제다. 절대적인 무거움과 상대적인 가벼움, 정작 인간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존재가치마저 잃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비판적이고 복종하지 않고 기존의 패러다임에 반항하는 이들에게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이 앞 다투어 그런 상황을 정리해 버린다. 사물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 있음에도 일방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마광수 교수의 수기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해체시켜 버린다. 삶을 대하는 그만의 태도와 자세, 왠지 거북하지만 쿨하다. 그만이 전하는 생의 메시지가 본능을 조금이라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과 우정과 인연에 관한 그만의 에피소드를 가볍게 들어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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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마광수 소설 <미친 말의 수기>를 읽고

<미친 말의 수기> -- 마광수 장편소설 | 베리스타 | 2011-09-08 |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104756 희망이란 과연 유용한 것일까? 아니 희망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서정주의 시 <정오의 언덕에서>의 해석   /   마광수

서정주의 시 <정오의 언덕에서>의 해석 ...................... 마광수 -- 시를 통한 성욕과 공격욕의 대리배설 <정오(正午)의 언덕에서> ( 향기로운 산 위에 노루와 작은 사슴같이 있을지어다. --- 솔로몬..

마광수 에세이집 <더럽게 사랑하자>를 읽고

<더럽게 사랑하자> (마광수 에세이집) 독후감 작성자 곽수창 작성일 2011.08.02 21:03 한줄 평 : 정신적 사랑 = 육체적 사랑 약 3일동안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내 생각이 한층 '자유'로워진다는..

[참고] 마광수 산문집 <마광수의 뇌구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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